2009년 11월 12일

이번 주는 글쓰기가 어렵네.

이번 주에 교회에서 전도축제를 앞두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밤 10시만 넘으면 잠을 자려고 서두른다. 사실 나는 새벽에 약하다. 그렇다고 밤에 강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잠에 무척이나 약하다. 고로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주는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무엇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을 때 괜히 강박관념에 빠져 들면 정신만 힘들 뿐이다. 사람이 포기도 알아야 한다. 내게 다음 주가 있으니 이번 주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엄청난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니다.

10월 말인가에 태안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으니 여행기를 짧게 써야 하고, 넷북을 샀으니 사용기도 써야 하고, SK의 TMAP도 체험기를 써야 하지만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도 이렇게 써 놓으면 최소한 다음 주에는 쓰지 않겠는가? 쓴다고 했으니. ^^

2009년 10월 23일

늦었다. 제 때 일어나지 못해서

며칠째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먹고 아이들 재우고 뭐 좀 하다보면 금방 12시를 넘긴다. 하루 6시간만 자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난 최소 7시간은 자야 하는 모양이다. 장모님이 수동에 사시는데 아직 석유 보일러로 난방을 하셔서 겨울이면 한 달 난방비가 50만원 돈이 나오곤 한다. 그렇다고 춥게 겨울을 날 수도 없고 해서 이번에 거실에 까는 전기 카페트와 선풍기 형태의 전열기를 구입해 드렸다. 어제 밤 늦게 다녀왔더니 집에 도착한 시각이 밤 12:30이었다. 밤 1시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늘 모닝콜을 6:30에 맞춰 놓지만 그 때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닝콜을 잘 듣긴 하지만 바로 2,30분 후로 알람을 다시 맞춰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허리 상태가 좋지 못한 관계로 일어나기 전에 잠깐 누워서 운동을 하고 일어난다. 일어나 보니 벌써 7시 10분 경. 아 이런. 그렇다고 아침을 거를 순 없다. 세수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7시 48분 경 집을 나선다. '늦었다!'


지하철에 사람 많은 거야 늘 당연한 것이다. 그 와중에 책을 꺼내 읽는다. 동대문역을 출발하자마자 열차가 맥이 빠지며 군데군데 전기가 꺼지고 멈춰 섰다. 전구간 단전이란다. '오호 이게 조금 길어지면 이것 때문에 늦었다고 얘기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이 반짝 스쳐 지나갔다. 좀 오래동안 멈춰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다시 전기가 다 들어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핑계를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놀랬다. 이게 나구나. 내가 제 때 일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인데 그 탓을 지하철에 돌리려 하다니.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책임지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 그게 물질적 손해이든 관계의 손해이든 혼자만의 자각이든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며 후회하고 결심하는 단계를 거쳐야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의 문제로 나의 지각을 변명하려 하는 한 나는 아마도 계속 늦게 일어나고 지각을 할 것이다. 나의 지각을 내 탓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6:30의 모닝콜은 그저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안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변화를 꿈꾼다. 여유있는 출근길, 복잡하지 않은 지하철, 중간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지각하지 않을 여유 이런 걸 갖고 싶다. 지금은 몇 십분의 이불 속이 더 좋지만 맨 정신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이 더 좋은 것인가를 따져서 나에게 진정 유익하다면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뗄 것이고 많이 실패하겠지만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 단 내가 핑계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내 책임으로 인정한다면.

2009년 9월 23일

정운찬 총리 인준 청문회를 보며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인정할 만하지만(그 발전 과정 속의 문제는 일단 제껴놓고) 아직도 시민의식이나 정직, 도덕성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얼 보고 그렇게 판단할까?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인사청문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실무 능력 판단이 주가 된 청문회를 기억할 수 없고 잡음없이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인준이 되거나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만 기억이 난다.


이런 문제가 소위 돈 좀 있고, 권력 좀 있고,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대다수 일반인의 모습이 그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금 떼 먹는 그 사람들처럼 우리 대부분도 기회만 되면 세금을 무시한다. 모두들 안 내는 세금 내가 왜 꼬박꼬박 내어야 하느냐며. 그러면서 누군가 부적당하게 세금을 마구 쓰면 내가 낸 세금으로 저런 못된 짓을 한다고 한다. 자신도 세금을 떼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남들이 다 위장전입으로 좋은 학교 가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그게 불법인지도 모른 채 또는 무시한 채 너도나도 위장전입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군대에 안 가려고 돈이나 연줄, 심지어 자해를 동원하기도 한다.(군대 얘기를 하기가 참 뭐하다. 난 시력이 나빠서 군대에 가질 못했다.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신검을 받으러 갔다가 군위관이 보고 그냥 면제라 했다.) 누군가 찔러 주는 돈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정도쯤이야 하거나 감사의 표시는 받아야 된다고 한다. 때론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국무총리로 인준하는 문제를 놓고 여의도가 한바탕 시끄럽다. 야당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안 된다고 하고, 여당은 그런 것이 총리직 수행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인준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운찬 후보자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왠지 호감이 갔고 괜찮았다. 전에 대통령 후보설이 나오고 할 때 오히려 기존 정치인들보다 낫겠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모를 때가 가장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나는 정운찬 후보자가 총리가 되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의혹으로 떠오른 문제들을 깔끔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냈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잘못을 가지고 현재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정치나 행정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하는 일들이 없어져야겠다. 스스로의 잘못에 책임을 져 보지 못한 사람은 결국 남의 잘못에 무어라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동일한 잘못을 앞으로도 할 것이고 기회만 되면 더 크게 할 것이다.


이제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번 잘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감옥에 갈 만하면 감옥에 다녀오는 것이고, 벌금을 내야 하면 돈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 사람이 정말 반성한다고 하면 그 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도 동일한 짓을 또 할 수도 있겠지만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2,30년은 지금 같은 풍토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너무 어렵다. 법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난 바보로 살겠다. 때론 남들처럼 살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바보를 지향하며 살겠다. 손해를 각오해야겠다.

2009년 8월 14일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어제 퇴근후 이발을 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운 후 명동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그란데 크기로 시켜서 3층 창가에 앉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꺼내 펴고 커피를 한 입 마셨다. 어제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내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도 같이 가고자 하고, 집에서 TV를 봐도 나랑 같이 있고 싶어한다. 나도 아내와 함께 있는 게 좋다. 여행을 떠날 때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라면 왠지 여행 행태가 다를 것 같고 좀 불편할 것 같다. 별 것 아닌 것도 아내와 함께 하는 게 좋다. 그래서 우린 부부다. ^^

책읽기를 참 좋아한다. 다만 읽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냥 쭉 읽으면서 좋은 내용이다라고만 느끼지 막상 지나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고 느낌만 간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지만 금새 사라지고 주어지는 상황에 그때 그때 반응하며 살아간다.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시간이 그래서 내게 중요하다. 멈추어 생각할 줄 모르는 내가 가지는 돌아봄의 시간이고 앞으로 달려갈 방향을 잡는 시간이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것마저도 아내는 아쉬워한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나는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아내는 아직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좀더 잘 설명해 줘야겠다.

아이들을 보면서 정리하지 않거나 심하게 장난치다가 다치거나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거나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떼 쓰거나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해 정신을 못 차리거나 하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침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내게 도움을 주었다. 좋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전환 반응을 보여 아이들이 감정적인 상처없이, 잘못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좋은 것체 집중하여 더 나은 모습을 하게 할지 생각하게 했다. 아내와의 관계는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평소의 독서는 쭉 읽으면서 좋게 느낀 글에 밑줄을 긋는 것이지만 나만의 시간에는 느긋하게 읽으며 생각하고 기록하고 또 생각하고 기록한 것을 되씹어보고 한다.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다가간다고 믿는다.

아내에게도 이런 시간을 주고 싶다. 나와 같은 방법일 필요는 없다. 아이들에게서 한걸음 떨어져서, 집안일에서 벗어나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람들과 관계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그런 시간을 아내에게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런 만큼 우리는 더 자라서 더 잘 사랑하며 살 것이다.

2009년 8월 10일

수련회 이후

중고등학생 시절의 수련회, 청년 시절의 수련회, 결혼 후에도 간간이 참석한 수련회... 중간에 참석하지 못했던 때가 있긴 했어도 수련회를 처음 참석했던 때로부터 25년 가까이 수련회를 참석해 보았다. 수련회 기간을 통해서 남들처럼 나도 눈물 많이 흘리고 죄를 직면하게 되고 더 이상 그대로 살 수 없어 새롭게 바르게 살리라 다짐하였다. 각각의 수련회가 다 달랐지만 수련회 이후는 거의 동일하였다.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수련회 참석 횟수가 늘어가면서 머리 속에 수련회 회의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 것이다. 수련회를 다녀오면 무엇하는가? 수련회 기간 너무나 좋았고 나름 감동 받고 결단하였다 하는데 여전히 변하지 아니하는 자신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이 실망하고 그런 자신이 용납이 안 되기도 한다.

수련회의 감격과 결심이 무너지는 데에는 보통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수련회를 마치고 그 감격과 결심이 그대로 생활에 그대로 이어지려면 수련회가 끝나면서 바로 일상에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수련회 기간 동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잠이 들면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게 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생활이 느슨해지기 일쑤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육체가 힘들면 짜증도 쉽게 나게 되고 여전히 본인이 싫어하던 전에 살던 삶을 그대로 살게 된다. 틈을 보인 순간 자신의 결심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수련회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난 여전히 수련회를 참석하고 싶어한다. 다만 멋모를 때처럼 수련회를 거치면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성령 하나님이 놀랍게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사람은 쉽게 변하지 못 한다. 특히 좋은 바른 모습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생각하는 수련회의 유용함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있다. 하나님과 만나는 경험을 가지는 데에 있다. 보통 때 외면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집중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죄가 죄인 줄 알게 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자신을 비울 때 자신을 향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비로소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어떻게 살겠다고 결단하게 된다. 왜 그런 결단을 하게 되었는지를 기억하고 결단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수련회가 감정만의 동함으로 끝나게 된다. 수련회 이후에 변한 게 없어도 다시 그 기억을 되살려 결단을 이루려는 감정과 무관한 의지적인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게 된다.

이번에도 짧게 단 하루 수련회를 다녀왔다. 다녀오고 나서 개인적으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나에 대해 충분히 실망했고 절망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회복되어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의 싸움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수련회는 집중적인 시간을 내어 경험을 가지는 소중한 시간이다. 잊어버리지 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싸움을 계속 싸워가려 한다.

2009년 2월 4일

스트라스부르에서 아침 산책을

스트라스부르에 밤에 도착했다.
밤 8시경이었던 것 같은데 해가 길어 너댓시 같았다.
현지 시각에 맞추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시각이 좀 일러서 아내와 주원이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혹시나 아침 식사를 주는가 물어 보았는데 따로 돈을 내야 한단다...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네.
주원이야 마냥 신이 났고.




호텔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스트라스부르의 거리를 걸었다.
길 가운데 4층 정도 높이의 가로수가 있는 게 좀 특이했다.
차들이 없어 좀 이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일요일 아침 7시였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여행을 와서 요일 감각이 떨어진데다 해가 벌써 높이 떠서 시각 감각도 잃었다.


조용한 아침 거리를 걷다보니 조그만 공원 놀이터가 나타났다.
무궁화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그 앞에서 한 컷 찍었다.
주원이는 놀이터가 마냥 좋아 아침부터 신나게 뛰어다녔다.

2009년 1월 23일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

유레일을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했다.
의외로 사람이 많아 자리를 잡으려 이동하는 길이 험난했다.
1등석표를 가지고 있으나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로 갔다.
도저히 기차 7량 정도를 거슬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우선 빈 자리에 앉았다.

주원이를 보고 유럽 남자 아이가 와서 같이 놀려고 했다.
우리 주원이 처음엔 어울리지 못하더니 나중엔 같이 사진도 찍었다.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에 오펜부르크(Offenburg)라는 곳에서 열차를 갈아 탔다.
아내 사진을 찍어 주고 있으니 외국 남자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덕분에 아내와 사진 한 컷.
그런데 주원이는 어디 있지...?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나?

고맙긴 한데 옆에 놓아둔 가방과 쓰레기통도 다 찍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