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3일

정운찬 총리 인준 청문회를 보며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인정할 만하지만(그 발전 과정 속의 문제는 일단 제껴놓고) 아직도 시민의식이나 정직, 도덕성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얼 보고 그렇게 판단할까?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인사청문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실무 능력 판단이 주가 된 청문회를 기억할 수 없고 잡음없이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인준이 되거나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만 기억이 난다.


이런 문제가 소위 돈 좀 있고, 권력 좀 있고,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대다수 일반인의 모습이 그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금 떼 먹는 그 사람들처럼 우리 대부분도 기회만 되면 세금을 무시한다. 모두들 안 내는 세금 내가 왜 꼬박꼬박 내어야 하느냐며. 그러면서 누군가 부적당하게 세금을 마구 쓰면 내가 낸 세금으로 저런 못된 짓을 한다고 한다. 자신도 세금을 떼먹고 있으면서 말이다.


남들이 다 위장전입으로 좋은 학교 가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그게 불법인지도 모른 채 또는 무시한 채 너도나도 위장전입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군대에 안 가려고 돈이나 연줄, 심지어 자해를 동원하기도 한다.(군대 얘기를 하기가 참 뭐하다. 난 시력이 나빠서 군대에 가질 못했다.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신검을 받으러 갔다가 군위관이 보고 그냥 면제라 했다.) 누군가 찔러 주는 돈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정도쯤이야 하거나 감사의 표시는 받아야 된다고 한다. 때론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국무총리로 인준하는 문제를 놓고 여의도가 한바탕 시끄럽다. 야당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안 된다고 하고, 여당은 그런 것이 총리직 수행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며 인준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운찬 후보자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왠지 호감이 갔고 괜찮았다. 전에 대통령 후보설이 나오고 할 때 오히려 기존 정치인들보다 낫겠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모를 때가 가장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안 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나는 정운찬 후보자가 총리가 되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의혹으로 떠오른 문제들을 깔끔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냈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많은 잘못을 가지고 현재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정치나 행정을 하고 회사를 운영하고 하는 일들이 없어져야겠다. 스스로의 잘못에 책임을 져 보지 못한 사람은 결국 남의 잘못에 무어라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동일한 잘못을 앞으로도 할 것이고 기회만 되면 더 크게 할 것이다.


이제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번 잘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감옥에 갈 만하면 감옥에 다녀오는 것이고, 벌금을 내야 하면 돈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 사람이 정말 반성한다고 하면 그 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도 동일한 짓을 또 할 수도 있겠지만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2,30년은 지금 같은 풍토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너무 어렵다. 법을 지키는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난 바보로 살겠다. 때론 남들처럼 살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바보를 지향하며 살겠다. 손해를 각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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