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게 어느 정도 열심히 하고 나면 마무리 되어지면서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 맛이 나는 건데 작년에 프로젝트를 할 때도 그랬고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지금도 여러가지 일이 줄지는 않고 마무리가 안 된 채로 갯수만 늘어가고 있다. 혼자만 하는 일이라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 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의사결정을 해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테스트도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다른 사람과 얼마나 협업을 잘 하느냐가 내 업무 성과와 직결된다. 급여로만 비교한다면 대여섯배 차이나고, 부대 비용까지 따지면 열배 이상 차이가 나니 당연히 내가 더 잘해야 하고 상대방이 잘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많은 급여 차이에도, 그에 따른 능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잘못만 탓하고 있는 나는 내 값어치를 다 못하고 있는 셈이다.
좀더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일을 챙겨야 하며 상대방의 수준과 상관없이 일이 진행되어지도록 머리를 짜내어야 한다. 좋은 결과를 빨리 만들어내려면 상대방이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일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고 상대방이 결정하고 일을 처리하고 하는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쉽게 할 수 있게 제반 상항을 만들어 주는 것일 수 있다.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인다는 것은 결국 내 결과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혼자 할 수 없다면 남도 잘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건빵눈으로 보는 세상
2011년 3월 12일
위대한 부모
행장님이 점심식사를 사 주셨다.
같이 일하는 문차장님과 함께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오늘도 행장님이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중에 선생, 부모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이랬다.
보통 부모는 자식에게 말한다.
좋은 부모는 자식에게 설명한다.
뛰어난 부모는 자식에게 보여주듯 설명한다.
위대한 부모는 자식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불을 심어 준다.
자식에게 변화를 기대한다면 동기부여를 해주고 열정을 심어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부모일까?
힘들 땐 그냥 말만 하고, 조금 괜찮을 땐 설명을 하는 수준인 것 같다.
설명해 주는 게 최상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수준이 있었다.
아이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동기부여를 하려면 부모가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가 불을 가지려면 현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많이 생각하며 감명 받은 바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책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는데 책도 읽고 생각도 많이 하고 더 자라가야겠다.
위대한 아빠는 그냥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문차장님과 함께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오늘도 행장님이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중에 선생, 부모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이랬다.
보통 부모는 자식에게 말한다.
좋은 부모는 자식에게 설명한다.
뛰어난 부모는 자식에게 보여주듯 설명한다.
위대한 부모는 자식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불을 심어 준다.
자식에게 변화를 기대한다면 동기부여를 해주고 열정을 심어주어야 한다.
나는 어떤 부모일까?
힘들 땐 그냥 말만 하고, 조금 괜찮을 땐 설명을 하는 수준인 것 같다.
설명해 주는 게 최상인 줄 알았는데 더 높은 수준이 있었다.
아이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동기부여를 하려면 부모가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가 불을 가지려면 현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많이 생각하며 감명 받은 바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요즘 책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는데 책도 읽고 생각도 많이 하고 더 자라가야겠다.
위대한 아빠는 그냥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2010년 6월 23일
월드컵 경기를 보고
어제 밤 거의 11시에 잠이 들었다. 야근을 하고 돌아와 씻고 성경을 조금 읽고 누운 시각이다. 오늘 새벽 나이지리아와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평소에 K리그도 사랑해야 월드컵에서도 잘 하는 건데 아직까지는 월드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새벽잠을 뿌리치고 일어나서 경기를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성공했다. 알람이 울리고 눈을 떴지만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일어나 소파에 앉아 TV를 켜니 정신이 들었고 차분히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리스전과 같은 상황을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주축 선수 몇이 빠진 나이지리아지만 잘했다. 만약 다 나왔다면 어찌 됐을까....?
쉽사리 풀리지 않던 경기가 나이지리아의 선제골로 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그리스전과 같은 세트 피스에서 같은 형태의 골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맘 고생 심한 박주영의 프리킥 골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교체되어 들어온 김남일의 반칙에 페널티골을 헌납하며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아르헨티나가 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한다는 걸 알았지만 혹시나 골을 먹을까봐 전전긍긍했다.
결국 끝까지 잘 버텨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원정 16강 진출만으로도 한 획을 그은 것이지만 승리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비겨서 올라갔다는 것과 지금 상태로라면 16강에서 우루과이에 깨지는 게 확실해 보인다는 것 때문에 많이 기쁘진 않았다. 이게 사람의 욕심일까? 16강에 올라가는 게 목표였는데 그게 달성되고나니 그것으론 만족하지 않고 마치 목표가 더 높았던 것처럼 기대치도 쑥 올라가 버려서 목표 달성의 성과를 작은 것으로 여겨 버린다.
다시 잠을 자기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조금 일찍 출근했다. 역시나 힘든 하루다. 9시가 되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집중이 안되고 졸립다. 오늘 하루 힘들겠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목표한 바를 이룬 우리 대표팀들처럼.
2009년 11월 12일
이번 주는 글쓰기가 어렵네.
이번 주에 교회에서 전도축제를 앞두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밤 10시만 넘으면 잠을 자려고 서두른다. 사실 나는 새벽에 약하다. 그렇다고 밤에 강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잠에 무척이나 약하다. 고로 깨어 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주는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무엇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을 때 괜히 강박관념에 빠져 들면 정신만 힘들 뿐이다. 사람이 포기도 알아야 한다. 내게 다음 주가 있으니 이번 주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엄청난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니다.
10월 말인가에 태안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으니 여행기를 짧게 써야 하고, 넷북을 샀으니 사용기도 써야 하고, SK의 TMAP도 체험기를 써야 하지만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도 이렇게 써 놓으면 최소한 다음 주에는 쓰지 않겠는가? 쓴다고 했으니. ^^
2009년 10월 23일
늦었다. 제 때 일어나지 못해서
며칠째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먹고 아이들 재우고 뭐 좀 하다보면 금방 12시를 넘긴다. 하루 6시간만 자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난 최소 7시간은 자야 하는 모양이다. 장모님이 수동에 사시는데 아직 석유 보일러로 난방을 하셔서 겨울이면 한 달 난방비가 50만원 돈이 나오곤 한다. 그렇다고 춥게 겨울을 날 수도 없고 해서 이번에 거실에 까는 전기 카페트와 선풍기 형태의 전열기를 구입해 드렸다. 어제 밤 늦게 다녀왔더니 집에 도착한 시각이 밤 12:30이었다. 밤 1시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늘 모닝콜을 6:30에 맞춰 놓지만 그 때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닝콜을 잘 듣긴 하지만 바로 2,30분 후로 알람을 다시 맞춰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허리 상태가 좋지 못한 관계로 일어나기 전에 잠깐 누워서 운동을 하고 일어난다. 일어나 보니 벌써 7시 10분 경. 아 이런. 그렇다고 아침을 거를 순 없다. 세수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7시 48분 경 집을 나선다. '늦었다!'
지하철에 사람 많은 거야 늘 당연한 것이다. 그 와중에 책을 꺼내 읽는다. 동대문역을 출발하자마자 열차가 맥이 빠지며 군데군데 전기가 꺼지고 멈춰 섰다. 전구간 단전이란다. '오호 이게 조금 길어지면 이것 때문에 늦었다고 얘기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이 반짝 스쳐 지나갔다. 좀 오래동안 멈춰 있기를 바라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다시 전기가 다 들어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핑계를 찾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놀랬다. 이게 나구나. 내가 제 때 일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인데 그 탓을 지하철에 돌리려 하다니.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책임지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 그게 물질적 손해이든 관계의 손해이든 혼자만의 자각이든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며 후회하고 결심하는 단계를 거쳐야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지하철의 문제로 나의 지각을 변명하려 하는 한 나는 아마도 계속 늦게 일어나고 지각을 할 것이다. 나의 지각을 내 탓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6:30의 모닝콜은 그저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안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변화를 꿈꾼다. 여유있는 출근길, 복잡하지 않은 지하철, 중간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지각하지 않을 여유 이런 걸 갖고 싶다. 지금은 몇 십분의 이불 속이 더 좋지만 맨 정신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엇이 더 좋은 것인가를 따져서 나에게 진정 유익하다면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뗄 것이고 많이 실패하겠지만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 단 내가 핑계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내 책임으로 인정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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